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출판 검열관과 나눈 대화에서:

— 그래요, 우리는 정말 어렵게 승리를 쟁취했소. 그래서 당신은 영웅적인 사례들을 써야만 하는 거요. 그리고 그런 예는 수백 가지도 넘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전쟁의 추악한 면만 보여주고 있소. 냄새나는 속옷만 보여줬단 말이오. 우리의 승리가 당신한테는 끔찍하고 무서운 것에 불과한 거요?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 진실들.

— 당신은 삶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거리에 있다고 말이오. 당신이 말하는 진실은 천박해요. 지나치게 세속적이오. 아니, 진실은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것이오. 우리가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


🔖 이미 수천 번도 넘는 전쟁이 이 땅에서 벌어졌음에도(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봤는데, 지구 상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들을 합치면 3천 번도 넘는다고 한다), 전쟁은 여전히 인간사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비밀 중 하나로 남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거대한 역사를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작은 역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뭐라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할말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탐색하기 간단해 보이는, 그리 넓지 않은 이 작은 영토 — 한 사람의 영혼의 공간 — 가 역사보다 더 난해하다. 알아내기 더 힘들다. 왜냐하면 내 앞에 있는 그건 살아 있는 눈물이고 살아 있는 감정들이기에. 대화하는 중에도 아픔과 공포의 그늘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기에. 순간 스치는 고통의 표정 앞에서 간혹 나도 모르게 ‘사람은 고통이 있기에 아름다운 건 아닐까’라는 불순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다. 그러고는 나 자신에게 흠칫 놀란다……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 “내가 정말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총을 쏘았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 울었는지는 말 못하겠어. (…) 당신은 작가잖아. 직접 한번 생각해봐. 뭔가 아름다운 말. 들끓는 이도 더러운 진흙탕도 없고 구토물도 없는…… 보드카 냄새도 피 냄새도 없는 그런 말을…… 우리 삶처럼 끔찍한 그런 거 말고 …….” 아나스타시야 이바노브나 메드베드키나, 사병, 기관총 사수


🔖 <이제는 말을 해도 되는 사람의 침묵에 대하여>


🔖 그런데 전장에서 조금 벗어나 포연이 옅어지는 순간에 보니까, 글쎄, 내가 그 고생을 하며 끌고 온 사람이 우리 전차병만이 아닌 거야. 한 명이 독일 병사인 거야, 글쎄…… 세상에, 얼마나 놀라고 기가 막히던지. 전장에서는 우리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판에 나는 적군이나 구하고 있었으니. (…) 내가 그대로 버려두면 그는 곧바로 숨을 거두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과다출혈로…… 결국 나는 그 병사를 데리러 되돌아갔어. 그리고 계속 두 사람을 끌고 갔지……

스탈린그라드에서 있었던 일이야…… 스탈린그라드전투는 정말 무시무시한 전투였어. 그렇게 처참하고 끔찍한 전투가 또 있을까. ‘심장 하나는 증오를 위해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위해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은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내 심장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 승리의 기록이 아닌 여자들의 목소리로서의 전쟁.

같은 전쟁에서 같이 싸웠지만 돌아온 여성들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

그때의 싸움보다 사랑에 대해 더 말하기 어려워했다는 것.

수많은 말줄임표들. 인터뷰를 가득 채웠을 pause들.